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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자서전: <기억 속 풍경> 저자 김애숙 님
꽃처럼 아름다운 인생 - 경북 영천에서 어린 시절 보낸 김애숙 님
기사입력  2015/05/14 [14:51] 최종편집   

 

▲대학시절


어르신 자서전: <기억 속 풍경> 저자 김애숙 님

꽃처럼 아름다운 인생 - 경북 영천에서 어린 시절 보낸 김애숙 님

 

4년 동안 자서전을 제작하면서 특이점은 여성 저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에 있다. 계약을 위해 수십명의 여성분들을 만나면 대부분 이런 이야기가 돌아온다.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운 것 외에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데 무슨 자서전이냐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애 낳고 키운 일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 과정에 깨알같이 소중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있으니 걱정말고 쓰시라...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 놓기가 간단치는 않다. 하지만 막상 글로 세상에 내어놓으면 참으로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 되는 것을 경험한다. 김애숙 님도 이렇게 소중한 이야기보따리를 글로 풀어 놓으셨다. 기존의 연대기적인 자서전이 아니라 좀 주저하시기도 했지만 간간히 기록해 놓은 경수필형식의 기록들을 살펴보니 그대로 책을 내도 무관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책이 나온 뒤에 전체적으로 읽어보니 역시 단숨에읽을 만큼 글이 좋다.

특히 벚꽃 피는 계절에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소개해 본다. 1948년 경북 영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잘사는 집보다 못사는 집이 훨씬 더 많았다. 정미소나 술도가집이 제일 부자였고 우리 집은 영천에서 한 집밖에 없던 양복점을 하고 있었다. 그리 넉넉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아침저녁밥 먹을 시간이면 꼭 거지가 찾아왔다. 그때는 유난히 거지가 많았다. 보통 다른 집이면 거지가 바가지를 들고 오면 바가지에 밥 한 그릇과 여러 가지 반찬을 부어주면 그만인데, 어머니는 작은 소반에 우리가 먹는 밥과 반찬을 꼭 같이 차려서 옆에 앉혀 먹여서 보냈다. 단골로 우리 집에 들르던 거지가 있었다.

수도가 있는 집이 드물어서 아침, 저녁으로 두 시간만 물이 나올 때 이웃에서 물지게를 지고 와서 수돗물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물 값은 고사하고 싫은 얼굴 한번 하지 않던 어머니였다.

대구에서 포항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우리 집 앞에 있었는데 버스를 갈아타는 사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공중 화장실은 꿈도 꾸지 못할 그 시절에 길가에 있는 우리 집은 그들에게 아주 고마운 화장실을 제공해주는 집이었다.

어머니는 장날에 상인들이 팔다 남은 물건들을 가져오면 말없이 사주는 일도 잦았고, 친인척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말없이 해결해주시는 분이 아버지였다. 내 바로 밑으로 태어난 남동생은 큰집으로 양자를 보냈다. 큰집에는 맏아들을 보내야 된다는 옛 관습에 따라 초등학교 입학가기 전에, 큰집으로 아들을 양자 보낸 부모님의 애잔한 마음은 이루다 말할 수 없지만, 담담히 속으로 아픈 마음을 다독였을 우리 부모님.

(기억 속 풍경 2014. 서울. 희망사업단,22)

 

누구나 꽃다운 청춘 시절이 있었다. 김애숙 님도 화려하지 않지만 소소한 꿈을 꾸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시간은 지나도 그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 기억의 일부를 올려 본다.

 

내가 좋아해서 읽었던 책들.

에반제린, 작은 아씨들, 테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인간의 조건, 주홍 글씨, 삼총사, 레미제라블, 렌의 애가, 녹색의 문, 빨강머리 앤.

내가 좋아 했던 꽃.

노란 해바라기, 노란 민들레, 노란 후리지아. 보라색 제비꽃, 보라색 아이리스. 하얀 마가렛.

내가 좋아 했던 시인들의 시.

김소월의 진달래, 초혼, 가는 길. 박목월의 나그네, 윤사월. 유치환의 파도.

 

사춘기가 왔을 때 청명한 하늘에서 햇빛 한줄기 내려와 물웅덩이를 반짝이게 하는 것도 예뻤고, 회색 구름이 어깨까지 내려앉은 흐린 날은 무겁게 사색에 잠기는 것도 은근히 즐겼고, 바람에 스쳐 지나며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 듣는 것도 좋았다. 안개 짙은 날 숲속을 걷는 것도 좋았고 비 냄새 맡으며 빗소리 듣는 것도 좋았다. 어느 날이던 모든 날들이 내게는 다 좋게만 느껴졌던 시절이다. 내 사춘기는 아프고 상처받고 힘들었던 날보다 즐겁고 유쾌한 날들이 많았다. 책 읽기 좋아했고, 음악 듣기 좋아했고, 고등학교 야구중계도 열심히 들었다. 가끔씩 유치하기는 했어도 시를 쓰며 내 나름대로 마음을 키우며 사춘기는 가고 있었다.(기억 속 풍경 2014. 서울. 희망사업단,24,25)

 

그렇게 봄과 같은 사춘기가 지나가면 아름다운 사랑도 찾아온다. 하지만 옛날에는 결혼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적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던 사회적 분위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197311일 선 본 날.

1973130일 결혼한 날.

부부의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

11일 학교 시무식에 참석해 있었는데 집으로 선보러 오는 사람이 있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고, 무슨 선을 정월 초하룻날에 보느냐며 투덜투덜 대며 집으로 왔다. 그 사람도 신정이라 시골집에 부모님 뵈러왔다 붙잡혀 왔다며 우리 집 대문으로 성큼 들어왔다.

나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고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고 그 사람도 부담 없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고, 우리는 선본다는 어색함 없이 오랜 친구처럼 만나고 헤어 졌는데 별, 나쁜 감정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님 끼리 서로 사돈 맺기로 결정하고 일사천리로 한 달 만에 결혼식을 했다.

마산 한일합섬에 근무하는 신랑은 주말에 우리 집으로 찾아오고 주말 부부로 3개월쯤 지났을 때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은 신랑이 마산으로 와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자고 부탁해 왔다. 아버지는 신랑을 따라가면 고생 할 거라며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며 편하게 친정에서 학교로 계속 출근하라며 마산에 가는 걸 말리셨다. 딸과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결혼을 했으니 지아비의 부탁을 들을 수밖에 없어, 스물일곱 해를 살아온 친정을 떠나 난생 처음 가보는 마산으로 출발했다.(기억 속 풍경 2014. 서울. 희망사업단,31)

다음호에 계속...

유명종/ 희망사업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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