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 그리고 세금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꾼 혁명의 계기, 그 밑바닥에는 권력 독점과 과세제도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독립혁명(1776)과 프랑스대혁명(1789)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지만, 공통점은 힘을 바탕으로 부여된 세금이다. 미국과 프랑스 국민은 그렇지 않아도 높은 세금으로 피폐해진 삶으로 고통받는데, 새로 부과된 세금은 분노의 용광로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최근에 우리도 종합부동세, 증여세, 상속세를 포함하여 금투세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서민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과세 제도로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도 유럽에 가면, 관광명소가 되는 수많은 아름다운 성당들이, 공정하지 못한 과세제도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즉 정치와 종교가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결탁된 결과이다. 즉 교회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세금을 면제받았다. 그러면서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통해 넉넉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그런 건축물의 건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짓겠다는 욕심의 결과로 면죄부(免罪符)를 파는 지경에 이르면서, 1517년 종교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현재 첨예하게 법리적으로 다투는 세금 중 하나가 상속세이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면서 형성한 재산에 대해, 죽음이란 자연적 현상으로 일어났을 뿐 어떤 이윤행위도 없었는데, 죽음을 원인으로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우리가 선진국으로 부르는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한 8개 나라는 아예 상속세와 증여세가 없다.
그러나 세금은 분배정의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제도라는 점에 동의한다. 조세에 대한 분노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정부는 조세의 형평성과 투명성, 신뢰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근로자들 중에, 약 33.6%는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국민의 4대 의무로 강조하면서, 전혀 세금을 내지 않는 근로자의 숫자가 이렇게 크다면 납세자들 사이에 위화감과 불신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크다. 적게 내는 것과 전혀 내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한다면, 조세법을 만드는 국회는 이해당사자가 아닌, 국민 전체와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여론 수렴과 숙성기간도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법을 만드는 것은, 어떤 법이든 다수에 힘에 의한 독재인 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의 가장 무서운 적은 ‘절대 다수의 절대 행복’이라는 달콤한 공리주의의 덫이라고 본다. 공리주의는 소수를 죽여서 다수가 행복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논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절대다수가 항상 옳다는 다수결의 원칙은 납세제도의 형평성을 파괴하여, 새로운 혁명의 불씨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그 어떤 선진국보다 교육열이 높고, 상식이 풍부하며 이성적인 나라이다. 국민의 대표들인 국회의원들은 이런 국민의 강력한 내적 에너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