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칼럼))
한반도를 연이어 강타한 태풍들 – 기후위기의 시대
태풍은 인간이 겪는 가장 공포스러운 재난 중 하나이다. 태풍은 강풍과 폭우와 해일을 몰고 온다. 농작물 침수, 농경지 유실, 양식장 피해, 산사태, 기반시설 파손, 정전, 연안 지역의 침수, 건물 파손 등등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전방위적이다. 재난을 경험한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병명으로 수년간 지속된다.
2020년 여름 한반도에 강력한 태풍 3개가 연이어 들이닥쳤다. 8호 태풍 바비는 8월 26일 제주도에, 9호 태풍 마이삭은 9월 3일 부산광역시에, 10호 태풍 하이선은 9월 7일 울산광역시에 각각 도착했다. 대한민국 기상청 분류기준으로 바비와 마이삭은 ‘매우 강한 태풍’이고, 하이선은 ‘초강력 태풍’이다. 이들로 인해 240명의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가 발생했다. 모두 이름이 있는 소중한 생명들이다.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를 연이어 강타한 이 사건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이 ‘기상이변’으로 인해 일회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는 인류가 초래한 장기적인 지구온난화 추세의 결과이자, 우리가 기후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이 글에서는 이 점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태풍 발생의 원인을 살펴보자. 태풍의 본질은 “온난 다습한 공기를 연료로 하는 거대한 엔진”이다. 대기과학자들이 즐겨 쓰는 이 표현에는 태풍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해수면의 온도가 26℃에 이르면 표층 해수가 빠르게 증발하기 시작한다. 고온 다습한 공기는 가볍기 때문에 위로 상승한다. 고온 다습한 공기는 상승하면서 냉각되는데, 일정한 높이에 다다르면 응결되어 구름을 형성하고, 응결된 수증기는 비로 쏟아진다.
하단부 해수면 근처에서는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 기압이 낮아지므로, 주위의 공기가 몰려든다. 새로 인입된 공기도 따뜻한 해수에 의해 덥혀져 증발된 수증기와 함께 위로 상승한다. 태풍이 탄생하는 지점이다. 태풍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는 따뜻한 수증기가 위로 상승해 물로 응결되면서 내놓는 잠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수의 온도가 올라가면 태풍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더욱 강력해 지리라고 넉넉히 예상할 수 있다.
다음으로, 태풍이 “온난 다습한 공기를 연료로 하는 거대한 엔진”이라는 사실을 깔끔하게 증명한 연구를 소개한다.
2017년 허리케인(북대서양 지역에서는 태풍을 허리케인이라고 부른다) 하비, 어마,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에서 대량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후 연이어 미국 남부를 강타했다. 이 세 개의 허리케인으로 인한 재산적 피해는 3,000억 달러이다(대한민국 예산의 3/5). 미 국립대기연구센터의 트렌버스 박사 등은 허리케인 하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멕시코 만 표층해수의 온도상승, 열용량의 증가가 허리케인을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엄밀히 증명했다.
멕시코 만 표층해수의 2017년 온도는 평균온도에 비해 0.7℃ 높았다. 허리케인 하비는 멕시코 만 표층해수의 열에너지를 바다로부터 흡수하여 바람, 폭우, 폭풍해일로 뿌려댔다. 하비가 지나간 후 멕시코 만 표층해수의 온도는 2℃ 내려갔다. 하비가 멕시코 만 표층해수로부터 뽑아내 육지에 쏟아부은 에너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1,000만 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보통, 대규모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허리케인이 발생할 때까지 얼마간 기간이 소요되나, 2017년 멕시코 만 표층해수는 금방 다시 뜨거워져 강력한 허리케인을 연이어 만들어냈다.
다음으로, 2020년 여름 한반도를 연이어 덮친 태풍들에 대해 살펴보자.
대한민국 기상청이 발간한 ‘2019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그 원인이 나와 있다. 위 보고서는 2019년 대표적 이상기후 사례로 “역대 가장 많은 태풍 영향”을 들면서, 그 원인을 “필리핀 동쪽 해상의 높은 해수면 온도에 따른 상승운동”이라고 밝히고 있다. 북서태평양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해수면 온도를 갖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의 30%가 북서태평양에서 태풍으로 발생한다.
최근의 전 세계 표층해수의 온도는 20세기 평균에 비해 0.6℃ 올랐는데, 북서태평양은 평균보다 더 많이 올랐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이 지역의 2019년 표층해수의 온도는 29℃에 달했고, 그로 인해 강력한 태풍이 연이어 발생했다. 2020년에는 표층해수의 온도가 이보다 더 높아져서 30℃에 달했다. 대한민국 기상청은 1년 후에 발간할 ‘2020년 이상기후 보고서’에서 “북서태평양 지역 표층 해수의 높은 온도로 인해 강력한 태풍이 연이어 발생했다”고 확인할 것이다.
▲대한민국 기상청 '2019년 이상기후 보고서', 필리핀 동쪽 해수의 온도가 29도로 상승하여 2019년에 연이은 태풍이 발생했다. |
|
그러면, 한반도에 닥칠 태풍의 향후 전망은 어떠한가?
울산 국립과학기술연구소의 이현재 교수 등 국내 학자 8명이 2019년 5월에 ‘기후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소개한다. 이 논문의 결론은, 인류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2024년~2049년 기간 동안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들은 파괴력이 점차 강해져서 북위 25도를 통과하는 태풍들의 파괴력은 45.9%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물론 이 지역 표층 해수의 온도상승 때문이다. (바람과 해일의 파괴력은 바람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데, 이를 수치화한 것을 ‘누적태풍에너지’(ACE, accumulated cyclone energy)라고 한다.)
11호 태풍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예고가 나오고 있다. 가능한 일이다. 세 개의 태풍을 보내면서 온도가 내려간 이 지역 바다는 다시 더워질 수 있고, 언제든 강력한 태풍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치선/ 법무법인 해우 변호사
재창간 3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