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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유권자들
(최기만의 시사칼럼)
기사입력  2018/04/05 [14:40] 최종편집   

 

▲ 최기만 지 객원 논설위원


(
최기만의 시사칼럼)
탐욕의 유권자들

 

내가 머리가 크면서 나름 정치적 사고력을 가지게 된 이후 가장 충격적이었던 선거가 두 번 있었다. 그 두 차례의 선거가 모두 대통령 선거로, 1987년 노태우 당선과 2012년 박근혜 당선이었다. 그 대선 결과에 대한 충격은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불러온 국가부도사태나 대통령 탄핵 여파로 인한 한나라당 천막당사 사건 후에도 패망하지 않고 다시 살아나 공룡의 체급으로 의회를 장악하더라는 총선의 당혹감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다.

이 두 차례의 선거에서 받았던 충격의 원인은 당선이 불가능할 줄 알았던 이들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감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도약과 발전을 위해 절대 당선되어서는 안 될 자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실망스런 민도에 있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사회에서 어찌 타인의 표는 가볍고 나의 표만 무거우랴마는, 지금도 여전히 태양왕 루이 14세처럼 짐이 곧 국가라 여기며 국민 살상을 멈추지 않는 아프리카 등지의 독재자들을 지탱해 주는 동력은 (아무리 인권문제가 있다 해도) 강력한 군부정권이 국가질서를 통제해 주리리라는 허황된 믿음을 지닌 유권자들이니, 어쩌면 우리가 걸었던 실패역사를 이렇게까지 빼닮을 수 있을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

 

멀게는 이승만의 자유당에서 시작해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민정당으로 이어지는 장기독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권력자들이 국민에게 철권을 휘두를 수 있었던 장기독재의 배후에는 그들에게 표를 던진 탐욕스런 유권자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우리는 이제야 깨달아가고 있으니, 박근혜 탄핵정국을 지나 새 정부를 경험하며 제법 국가의 품위를 생각하는 안목이 성장한 우리가 답답한 마음으로 그런 독재국가를 바라보듯 서구 일류국가들도 똑같은 심경으로 우리를 보아 왔을 터라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이기도 하다.

그들의 집권을 가능케 만든 이들 유권자군은 정치적 함수관계에 관한 정답추출에는 (스스로 현명하다고 믿는 것과 달리) 꽤나 어두운 편이어서, 바둑판에 돌을 놓아야 할 곳에 놓기 보다는 권력의 채찍과 당근에 길들여진 족벌언론이라는 훈수꾼들의 부추김에 귀가 솔깃해 그들이 두라는 곳에 생각 없이 돌을 놓은 결과가 지금까지 이 지경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관악()()에서 한 명씩의 당선자를 내는 지금의 중선거구제와 달리, 이 둘을 한 선거구로 합해 두 명을 뽑는 대선거구제에서 5공 당시 야당이었던 민한당 58% 득표자와 집권 민정당 31% 득표자가 가지는 금배지의 무게는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로, 이것이 5공 민정당의 폭압정치를 스스로 용인했음을 그들에게 표를 던졌던 이들은 지금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 아니면 유권자의 묻지마 결정권에 태클을 걸지 말라며 여전히 카인의 후예들을 지지하고 있을지도 말이다.

역사에서 만약에라는 가정처럼 무망한 말은 없다고 네루는 인디라 간디에게 옥중 편지로 말했던가. 탐욕스런 그들이 재벌언론들을 이용해 곳곳에 숨겨둔 수많은 치명적 덫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체를 간파한 유권자들이 표를 던지는 일이 없었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박종철도 이한열도 광주의 슬픔도, 짧은 기간에 수천 명이 목숨을 버리고 가정이 파괴된 IMF나 세월호 비극도 우리 역사에서 과연 있었을까 모르겠다. 게다가 이름 대신 수인번호로 호명되는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교도소에 누워서 나는 유권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줬을 뿐 전혀 잘못이 없으니 배 째라며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모습도 말이다.

지난 수십 년 간의 선거를 통해 난무했던 구호 중 가장 허황된 것이 있다면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일 것이다. 유력 정치인이 경제를 살려주면 우리집 살림형편도 나아지리라 기대했던 유권자들이 뒤늦게 확인한 것은 나 아닌 그들의 재산과 그들 자식들의 일자리만 늘어났다는 것 외에는 없으니, 탐욕의 유권자들도 탐욕스런 그들과 공동정범이었다 해도 하등 자존심 상하거나 억울해 할 이유는 없다. 그러고 나서 이 모든 게 누구 탓이라며 그들을 찍은 손가락을 자르고 후회해도 결국은 그게 자기 이야기라는 걸 모를 때가 너무 많다는 사실도 말이다. 우리가 그런 대통령을 갖게 된 건 유권자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됐기 때문이니, 탐욕스러운 유권자들이 유죄라 해도 그렇지 않은 우리의 책임 역시 무죄일 수 없는 이유다.

 

총이 칼에 항복하는 시대의 종언

 

과거의 투표행위에 대한 아무런 분석이나 반성도 없이 달콤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처럼 한심한 일도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제시했던 과거 약속의 이행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현재의 삶은 개의치 않고, 이미 한물 간 정치인 몇 사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아직도 일부계층에서는 반복되는 모양새다. 정치 선진국과 후진국의 분명한 차이는 국민 스스로가 정치인들의 메시아가 되거나, 아니면 자기들을 길들여줄 메시아를 기다리는 국민의 차이다. 이 두 부류의 유권자가 경험하는 미래는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지겹도록 경험해 왔다.

이제 다시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양의 탈을 쓰고 얼굴을 내미는 늑대나 손에 밀가루를 바르고 호랑이가 아니라며 손을 보여주는 전래동화 이야기처럼, 국민에게 유해한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유권자라 쓰고 개돼지라고 읽는 국민들을 요리하기 위한 전략공천이라는 속임수를 위해 골몰한다. 지지도 회복을 위해 재래시장에서 어묵을 먹거나 요양원을 방문해 보란 듯이 죽을 떠먹여 주는 서민 코스프레에 감동(?)해 지지도를 올려주는 단순한 유권자들이 있는 한 그들에게 받을 푸대접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두 번은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세 번째 부터는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더 나쁜 법이니 말이다.

탐욕스런 정치인들의 전략공천에 대한 최대의 무기는 현명한 유권자의 전략투표다. 그동안 국민들이 전략투표만 잘 했어도 현대사의 비극은 거의 없었거나, 아니면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전략투표란 가장 유해한 정당과 정치인을 걸러내는 작업으로, 총을 들고도 칼에 항복하는 이 기막힌 패배의 시대는 여기서 막을 내렸으면 좋겠다.

그러니 투표는 제대로 하자. 자신과 후손과 이웃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권자의 자격을 생각해 제대로 준비하고 투표하자는 말이다.

최기만 본지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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