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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무리들의 이기심과 통찰력
(안영혁의 힐링칼럼)
기사입력  2017/02/24 [17:12] 최종편집   

 

▲ 안영혁 목사

(안영혁의 힐링칼럼)

많은 무리들의 이기심과 통찰력

 

필자가 목사로서 스스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겼던 설교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많은 무리들에 대한 설교였다. 요즘은 기독교인들의 선제적인 잘못으로 안티기독교인이 많지만, 그래도 성경에서 예수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그 어떤 주제보다 확고하다. 특히 유명한 산상복음 전후에는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랐다는 말이 나오는데, 인상적이다. 산상설교 전에도 사람이 따랐고, 후에도 사람이 따랐다는 말이다. 이 말은 즉 예수는 한결 같았고, 그래서 걸음을 더할수록 사람들에게 발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많은 무리에게. 필자는 이번 국정 난행 때의 촛불집회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몇 달간 수많은 무리의 정치적 힘을 보았다.대통령은 선거를 통하여 국가를 관리할 권한을 받았지만, 그가 길을 벗어나자 수많은 무리는 그 권한을 되돌려왔다. 리더십은 한 시대의 지혜로서 민심이 나갈 방향을 보여주도록 약속되어 있지만,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많은 무리 자신들의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이 없으면 당장 땅이라도 꺼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런 경험은 우리 민주주의의 중대한 경험이 될 것이다.

 

수많은 무리가 늘 옳은 견해를 가진 것도 아니고, 또 모든 결정을 관철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대세의 향방은 결코 이들을 거스를 수 없었다. 시대적으로 살펴볼 때, 수많은 무리는 매우 이기적으로 잘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기도 하지만, 한편 삶의 기초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하여 공적인 선을 견지하기도 한다. 수많은 무리의 변증법이라고나 할까, 정말 그렇다. 필자는 이번에 민주주의에 대하여 그런 것을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공적인 선과 함께 사람들의 이기적 욕망까지 인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예수가 만났던 수많은 무리들에게서도 민주주의에 관한 아주 역사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성경에 나오는 그 수많은 무리들은 성경에서도 참 중요하지만 그들이 경건과 선 그 자체는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역시 오늘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기적 욕망과 공적인 선 이 두 가지 가치는 늘 충돌하지만, 결정적일 때에는 적어도 꼭 필요한 공적 선이 작동한다는 것.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하여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우정치라고 하면서, 대중이 어리석다고 말한 것은 미묘한 귀족주의적 편향을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철학자의 망발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무리는 이기적이지만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꼭 필요할 때 가장 선한 것은 오히려 수많은 무리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의 모양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인간 세계는 결국 이 사실에 기대어서 유지되는 것 같다. 매우 불안하지만 생존은 그렇게 이어지고, 한편 최악의 상황에서는 많은 무리들 안에서 올바른 가치가 발동한다.

 

평화로울 때에도 이 민주적 가치를 망각하지 않는 사회가 선진적인 사회이다. 이번 정치 일정에서 필자는 우리가 이것을 뼛속 깊이 새겼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은 이 올바른 가치를 자주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것 같다. 이번 박대통령의 난행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교훈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결정적으로 잘못하기도 했지만, 국민들의 이기적 욕망이 그 전에 작동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유지와 진전을 위해서 박대통령의 탄핵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헌법재판소는 재판을 함에 있어서, 단지 박대통령의 비위를 입증하는 것만이 아니라 국가 민주주의의 진전과 관련한 이런 법철학적 기반을 사용할 것이다. 탄핵재판은 형사적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판단을 한다는 헌법재판소장의 말은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민주주의의 추이에서 보이는 수많은 무리는 이기적인 욕망과 공적인 선의 추구라는 성격을 함께 가진 집단이다. 필자는 이번에 그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기심조차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란 단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참으로 행복한 사회여야 하는 것이다. 박대통령이 사실 복지로서 사람들에게 사탕발림을 했다. 이제 그런 대통령을 물리친 다음에는 복지행정이 민주주의의 가장 중대한 영역으로 부각되고 진정으로 발전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안영혁(총신대학교교수, 예본교회 목사)

재창간 2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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