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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일들
(안영혁의 힐링칼럼)
기사입력  2016/05/26 [11:11] 최종편집   

 

▲안영혁 목사


(안영혁의 힐링칼럼)

무서운 일들

 

내가 참 바보처럼 착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추천서가 필요했다. 내가 그곳에 소속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곳에서 나를 추천하는 추천서를 써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추천서 쓰기를 위임받은 사람이 말했다. 내가 당신을 대했던 적이 별로 없고, 아는 바가 없으니 추천서를 써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정황상 그는 나를 믿어주어도 되는 때였다. 그래도 그는 천연스럽게 그렇게 이야기했고, 늘 남의 사정을 잘 알아듣는 나는 그에게 설득이 되었다. 나는 그곳에 그야말로 자원봉사자처럼 가 있고, 그곳에서는 좋은 인력을 비용들이지 않고 사용하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꼭 추천서가 필요했던 나는 내가 소속되지도 않은 다른 곳에 가서 내 사정을 충분히 알아주는 다른 사람에게 추천서를 받아서 나의 상황을 넘어갔다.

 

나는 두고두고 내가 어찌 그리 바보 같은 짓을 했나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다고 느끼곤 했다. 그 때 나는 젊은 청년이었고, 겉으로만 봐도 참 순정한 청년이었다. 온 세상이 나서서 앞길을 책임져 주어야 할 그런 청년이었다. 그런데 늙수그레한 그 사람은 내게 추천서를 안 써주었고, 여전히 여기저기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에게 꽤나 존경까지 받아가면서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이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그 사람은 이제는 모든 일선에서 은퇴하였다. 나를 추천한다고 해서 큰 위험부담을 안는 것도 아닌데, 젊은 사람을 위한 추천서를 그렇게 써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순수한 듯이 그렇게 남을 설득하곤 한다. 대차게 대드는 사람이나,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에게는 웃으며 추천서도 써주고, 그 사람 참 똑똑하다고 농담하면서 그렇게 지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이미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그마한 안전을 위해서 젊은 사람의 미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그냥 설득시켰다는 생각에 자신들을 기특하게 여기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횡설수설일까 글을 쓰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교육학에서는 적어도 장년기를 세계의 중심으로 본다. 왜냐하면 장년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간에 갈고 닦은 지식과 기술로 온 세상을 먹여 살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년기가 세계의 중심인 것은 자기보다 젊은 사람을 자신의 직업으로 돌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년기에 있으면서 그 일을 하지는 않고, 그 힘으로 자신이나 지키고, 젊은이보다는 자신들의 처지를 중심으로 사람을 설득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세계의 중심이 될 자격이 없다. 대체 당신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서론을 이미 장황하게 늘어놓고, 또 다시 서론 단락을 쓰고 있는 것인가? 박태환 이야기다. 그 사태를 보면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체 이 일을 어떻게 말해야 잘 말하는 것일까 하고 내 젊은 날을 되새겨 보고,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서 교육학 지식을 가지고 박태환 망가뜨리기를 하나도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것이다.

 

박태환이 도핑 테스트에 걸려 넘어진 일에서 완전히 책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박태환 문제를 다루는 당국자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젊은 운동선수들을 더 윤리적으로 만든다는 명분으로 국제적 징계가 끝나고도 우리 차원에서 징계를 이어 간다는 그런 법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 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끝까지 지키겠다는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남들에게 설득당하기 잘하는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또 설득될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설득되기 전에 바른 길을 이야기해 두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젊은이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처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요즘 정말 국가가 젊은이들에게 해준 게 대체 뭐가 있다고 세상에 그런 빡빡한 규칙을 고집한다는 것인가? 어떤 다른 사람이 박태환과는 반대방향에서 이의제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명백하게 젊은이의 미래를 중심으로 처리한다면 대체 무엇을 설명하지 못하겠는가?

 

필자가 느끼는 것은 그 당국자들은 그렇게 하는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을 살펴주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선거 때 사람을 잘못 뽑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필자로서는 이런 사람들이 더 무섭다. 우리 시대가 무섭고, 우리 자신이 무섭다.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우리는 장년기를 보내는 사람들로서 자격이 많이 부족하다.

 

안영혁(예본교회 목사, 총신대학교교수, 관악마을지원사업단단장)

재창간 2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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