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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라로 돌아간 데이빗 보위
기사입력  2016/02/04 [20:30] 최종편집   

 

▲     © 운영자

 

성지인의 음악세상

별나라로 돌아간 데이빗 보위

 

내가 음악잡지를 통해 데이빗 보위(David Bowie)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가 고2였다. 당시 국내에는 거의 유일했던 팝 전문지가 있었는데, 팝송을 좋아했던 이들에게 미국의 최신 빌보드 차트는 물론 그 바닥의 크고 작은 소식을 소상히 알려주던 월간팝송중간에는 유명 팝 가수들의 공연 모습이 컬러화보로 실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의 특집화보에는 기괴한 복장과 요상한 분장으로 치장한 어떤 가수의 공연 모습이 여러 쪽 담겨 있었는데, 그 잡지에서 처음으로 접한 데이빗 보위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재수 없는 놈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면 일본식 교복차림의 빡빡머리에 교련시간이면 김일성 때려잡자며 총검술을 연습하던 동양 후진국 고교생의 눈에 비친 그의 무대의상은 아무래도 제 정신을 가지고 노래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경직된 문화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FM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느낌의 노래를 듣다가 DJ가 소개하는 가수 이름을 듣고 이게 바로 그 재수 없는 놈으로만 여겼던 데이빗 보위의 노래이며, 은근한 중독성을 주는 그 노래의 제목도 Space Oddity(우주교신)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여기는 지상관제센터. 톰 소령은 응답하라. 들리면 단백질 알약을 복용하고 헬멧을 착용하라. 지금 초읽기를 시작하고 엔진을 가동한다. 점화장치 확인한다. 신의 가호가 당신과 함께 하길...

여기는 톰 소령. 깡통같은 우주선에 앉아 바라보는 지구별은 몹시 푸르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통신이 두절되더라도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

 

Space Oddity는 우주를 비행하다 지구와의 교신이 끊어진 조종사 톰의 이야기다. 광활한 우주에서 홀로 미아가 된 자의 고독감과 비극을 침울하게 읊조리는 Space Oddity는 지금도 많은 우주비행사들이 좋아하는 곡이다. 실제로 캐나다 출신의 우주비행사 크리스 헤드필드는 우주정거장에 통기타를 가져가 스스로 Space Oddity를 부르며 뮤직 비디오를 찍었고, 이것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촬영된 뮤직비디오가 되었다.

 

데이빗 보위를 언급할 때 그와 분리할 수 없는 용어가 바로 글램록(Glam Rock)이다. 화려하다는 뜻을 가진 글램록은 197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시작된 음악양식이지만, 시각적인 효과와 연극적인 무대 연출로 더욱 각광 받았던 장르다. 데이빗 보위는 글램록 시대를 개막한 선두주자이자 글램록의 전설이자 대부였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젠더 스타일의 머리모양, 짙은 화장과 반짝이는 의상,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조명과 무대는 글램록 스타들의 간판이자 전매특허였다. 데이빗 보위를 필두로 록시뮤직과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록스타 마크 볼란이 이끄는 T.렉스 등이 대표적인 글램로커로 활동했으며 눈길을 끄는 화려한 양성적 패션과 퇴폐적인 분위기가 서구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타는 듯 번쩍거리는 의상과 메이크업, 돋보이는 헤어스타일로 무장한 이들이 스테이지에서 펼치는 다이내믹한 몸짓은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글램록에 심취한 젊은이들은 앞 다퉈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관능적인 느낌을 풍기는 글램패션세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47년 영국 브릭스톤에서 데이빗 로버트 존스라는 본명으로 지구별에 도착한 그는 고교졸업 후 직장에 다니면서 퇴근 후 런던 근교의 클럽들을 전전하며 음악활동을 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그의 음악은 금방 눈에 띄어 그 당시 영국 최고의 수퍼그룹인 The Who의 공연에도 참여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1964데이비 존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싱글 Liza Jane 이후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음악 활동 기간 동안 데이빗 보위는 가상인물 콘셉트 활동시절인 지기 스타더스트를 포함해 총 25매의 정규앨범을 발표하는 동안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통해 다채로운 모습을 표출해왔다.

 

그는 뛰어난 로커였고 70년대 초반의 글램록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 누구보다 화려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과 함께 잊을 수 없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했으며, 그의 창의력과 혁신성은 쉼 없는 변신과 진화를 거듭했다. 그가 행해온 다양한 음악 스타일의 변화와 더불어 고유한 색깔의 기반 위에서 채색한 장르의 범주만 봐도 그가 얼마나 진보적인 뮤지션이었으며 그의 음악적 역량과 상상력의 확장 범위가 얼마나 크고 넓었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1969년 그를 스타덤에 올린 앨범 Space Oddity가 출반되어 많은 뮤지션들에게 스페이스뮤직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명실상부한 스페이스 사운드의 왕좌에 올랐다. ‘우주교신은 인류 최초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열흘 전에 발표한 앨범으로, 우주에 대한 그의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노래 속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우주(Space). 그가 지구를 떠나기 직전까지도 작업했던 앨범도 Black Star. 때문에 그가 남겨두고 떠난 음악유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사망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자신이 태어났던 별나라로 되돌아갔다고 표현한다. 그것이 일생동안 광대한 우주를 사랑하고 우주의 신비를 노래한 음유시인을 잃었다는 크나큰 상실감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이기 때문이리라.

 

서구의 창의적 예술행위를 이해하기에는 그것을 망국의 퇴폐라고 국가가 강제하고 통제했던 예술철학의 흑역사 속에서, 대중음악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어린 시절 잠시 재수 없는 놈으로 오해했던 데이빗 보위에게 뒤늦게나마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69년간 지구별에 머무는 동안 우리 지구인들에게 멋진 음악선물을 주고 다시 돌아간 당신의 고향 별나라에서 영원히 행복하기를...

 

재창간 256호

최기만/ 팝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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