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관악구의회 2024년 미국팀 해외비교시찰 보고서: 주무열 의원
미국과 한국의 정치사회문화 같은 현상, 다른 선택
모든 국가는 한 번 경로가 정해지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로를 바꾸기 어려운 경로의존성을 갖는다.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바로 잡으려고 해도 기존의 사회, 문화, 정책 등의 관성과 기득권 때문에 바로 잡기가 쉽지 않다. 개혁이 항상 힘든 이유다.
미국은 지난해 총기에 의한 사망사고가 4만 2천 건이 발생했다.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자수를 넘어선지 오래다. 총을 한 번에 규제해서 아무도 못 갖게 된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대륙을 개척하던 시기부터의 관습, 총기산업의 존재, 이미 총기가 시중에 풀려있는 상태에서 규제하게 되었을 때 강력범죄에 대한 대안부재 등 총기규제를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들에 의해 발목이 잡힌다.
그래서 모든 정책은 특정국가에서 모범이 되는 사례는 있되 보편타당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곳의 사회, 문화, 정책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우리사회의 문제점 그 자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모든 정치인들이 해외비교시찰에 나서는 이유다.
관악구의회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를 지난 4월 21일부터 4월 29일까지 6박 9일간 다녀왔다. 벤처밸리를 추진하는 관악구 입장에서 실리콘밸리의 환경과 글로벌기업들을 보고자 했다. 아울러 다른 도시의 의회를 방문해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또 다른 목표였다. 외유성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해 그랜드캐니언이나 라스베가스 같은 곳은 사전에 배제했다.
의원들끼리는 1년 전부터 미국서부에 대해 어떤 질문들을 해야 할지 추려보았다. 서울보다 비싼 주거비의 문제를 캘리포니아는 어떻게 다루는지, 정치구조가 어떠하고 사회가 정치에 지불하는 비용은 어느 정도 되는지를 질문하고자 했다. 또한, 환경이슈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950달러까지의 절도는 경범죄로 처리되는 법안 이유와 치안의 문제는 없는지, 대한민국에서도 날로 심각해지는 마약문제를 미국은 어떻게 다루는지 등 단순검색으로 찾기 어려운 정치적 현안에 대한 질문들을 갖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주거형태 교통
첫 도시인 LA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에게 물었다. LA의 주거비는 아주 작은 방 한 칸이 월세 220만원, 화장실이라도 붙어있으면 300만원이란다. 유학을 가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400만 원 이하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 LA라고 한다. 높은 주거비는 대한민국과 비슷했지만 도시의 모습은 대한민국과 사뭇 다른 끝없이 펼쳐지는 저층주거지의 모습이었다.
인근 오렌지카운티의 부에나파크라는 도시에서 관련 이야기를 했더니 캘리포니아는 고층에 대한 규제가 많다고 한다. 미국에 가기 전 해당 도시의회의 회의록을 찾아봤더니 8개월 즈음 전에 진통 끝에 400%의 용적률이 허용되었다. 대한민국은 1400%를 넘어가는 대형아파트 단지도 많은데 이곳은 왜 그렇지 않은지를 물었다. 미국인들은 아파트는 좋지 않은 주거형태이고, 저소득층이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고밀도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 주변의 자산가치가 하락하게 되어 주민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노숙인 쉼터를 빗대어 이야기했는데 그들에게 아파트는 그저 님비의 대상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산호세의 도시개발국장을 만나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여전히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은 국토가 비좁고 수도권으로 밀집하여 시민들이 주거비로 고통 받는데, 캘리포니아는 아주 넒은 땅에서 살고 있어 도리어 주거비로 고통 받는다. 아파트는 저소득층을 불러오니 개발은 나쁜 것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니 종상향이나 용적률이 올라가면 시민들이 반대운동을 한다.
낮은 밀도에서 살고 있으니 도시의 대중교통의 효율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차를 구입해서 운전해야 하니 도시에 스모그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것이 모두 기존의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경로의존 현상이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는 참으로 화창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와보니 공기도 안 좋고 매연도 심하다고 말한다면 아마 나는 이제 그곳은 땅이 너무 넓어서라고 답할 것이다. 언뜻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응답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답변이기도 하다.
미국 정치인 및 비용
미국의 정치적인 측면은 어떨까?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정치인을 싫어한다. 기초의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국회의원을 확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캘리포니아주도 그럴까? 우리는 각 도시를 방문하면서 정치의 구조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했다.
LA 시의회는 인구가 400만에 이르는데도 의원이 15명밖에 없다. 기초의회는 아예 없다. 그러면 미국 시민들은 만족할까? 아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을 대표해야할 정치인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로 LA 시의회의 현직의원인 존 리씨는 자신들의 권한이 줄어들게 되니 의원을 늘리는데 반대한다.
비용적인 측면은 어떨까? LA시의원들은 임금으로 3억 정도를 받고 본인들의 보좌진, 사무실 비용으로 20억 정도를 추가로 지원받는다. 15명 정도이니 의원에 나가는 세금만 350억 정도에 이른다.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하면 광역의원 110명분의 임금에 기초의원 400여명분의 임금을 합친 것보다 크다. 서울의 500명의 의원보다 캘리포니아 15명의 정치비용이 더 드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의 시민들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치가 훨씬 저비용 고효율로 느껴질 것이다. 정치인에 대한 비용이라는 같은 주제에도 태평양 건너의 두 곳은 생각이 정반대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가장 닮은 사회는 대한민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가보니 사람의 행동양식, 건물양식, 먹고 마시는 음식 맛 등 너무 한국과 비슷해서 태평양 건너 다른 나라에 왔다는 현실감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음식물쓰레기를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는 문제라거나, 주차장 면적이 자동차 대수의 1000%를 넘는 문화라거나, 기후위기의 문제를 재활용에너지를 생산하는 곳과 계약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등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의원들끼리 이야기를 할 주제들이 매우 많아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해외비교시찰을 다녀왔다.
단기적으로는 관악구의 정책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책을 다루는데 있어서 경험을 잘 녹여내야 하겠다.
주무열 관악구의원(라선거구: 낙성대동, 인헌동, 남현동)